
새벽 두 시쯤, 회사 프로젝트 문서를 붙잡다가 책장을 다시 펼쳤다. 「마흔에 읽는 니체」를 세 번째 읽는 중이었다. 첫 독에서 지나친 ‘정신의 세 단계 변화’가 그날에는 내 업무 이야기로 읽혔다. 낙타가 사자가 되고, 사자가 아이가 되는 과정이다.
세 번 읽은 문장이 새로 보이는 이유는 책보다 내 상황에 있었다. 어려운 프로젝트를 받으면 나는 먼저 짐의 무게를 계산한다. 일정과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어떻게든 끝낼 방법을 찾는다. 실행에는 도움이 되지만,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와 어떤 규칙을 바꿀 수 있는지는 뒤로 밀린다. 그날 문서를 붙들고 있던 나도 짐을 잘 지는 데 집중했다.
낙타와 사자 사이에서 발견한 내 습관
장재형은 니체의 정신 변화를 낙타, 사자, 아이의 순서로 설명한다. 낙타는 주어진 무게를 견디며 “해야 한다”를 따른다. 회사에서 난도가 높은 프로젝트를 받았을 때 내 첫 반응과 닮았다. 요구사항이 타당한지 묻기 전에 일정표를 만들고, 짐을 지는 기술부터 찾는다. 프로에게 필요한 태도지만 오래 유지하면 요청의 목적과 실패 기준을 검토하지 못한다.
사자는 기존 명령에 “아니오”라고 말하며 스스로 원할 자유를 얻는다. 나는 공부와 도구를 다룰 때 이 태도를 자주 쓴다. 남이 정한 커리큘럼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클리핑 도구를 만들고, 리뷰 시스템과 위키를 붙여 내 학습 흐름을 조립한다. 쓸모가 없으면 버리고 필요한 기능만 남긴다. 외부 규칙을 해체하는 일에는 익숙한 셈이다.
회사 프로젝트 앞에서는 낙타의 습관이 먼저 나온다. 요구사항과 납기, 이해관계자가 있으니 내가 모든 규칙을 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주어진 조건을 전부 고정값으로 볼 이유도 없다. 목적은 고정돼도 검증 순서와 프로토타입의 크기는 바꿀 수 있다. 회의 형식은 정해져도 내가 준비하는 질문과 자료의 형태는 고를 수 있다. 이 선택지를 찾지 못하면 사자의 자유는 불평에 머문다.
책을 읽으며 사자를 완성점으로 보지 않게 됐다. 기존 가치를 부수는 힘만으로는 다음 기준을 만들 수 없다.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의 니체 해설도 가치 창조를 단순한 의지의 선언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니체의 가치 창조를 제약과 우연에 노출된 어려운 성취로 읽으며, 해석에도 논쟁이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회사의 제약 속에서 새 작업 방식을 만드는 문제와 맞닿는 지점이다.
아이의 긍정은 낙관보다 정직에 가깝다
세 번째 단계의 아이는 잊고, 놀고, 새로 시작한다. 아이는 남이 밀어야 움직이는 바퀴보다 자기 힘으로 도는 바퀴에 가깝다. 나는 처음에 이를 “힘든 일도 재미있게 생각하자”는 조언으로 읽었다. 그렇게만 읽으면 현실을 미화하기 쉽다. 일정이 빠듯하고 요구사항이 충돌하는데 즐겁다고 주문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니체의 긍정에는 현실을 똑바로 보는 태도가 함께 붙는다. Stanford 해설은 삶의 긍정과 정직을 연결한다. 현실을 거짓으로 꾸민 뒤 받아들이는 태도는 자기기만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내가 프로젝트에서 가져갈 긍정도 같은 조건을 가져야 한다. 안 되는 지점은 안 된다고 적고, 통제할 수 없는 제약은 확인한다. 그 위에서 내가 만들 수 있는 규칙을 찾는다.
아이는 실패를 모른다는 식으로 낭만화할 필요도 없다. 회사에서는 기록을 남겨야 하고 같은 오류를 반복하면 안 된다. 실패에서 얻은 정보는 남긴다. 실패가 내 능력 전체를 판정한다는 해석은 버린다. 로그와 회고를 보존하면서 다음 실험은 새 조건에 맞춰 설계한다. 망각을 재시작 권한으로 읽으면 업무에도 쓸 수 있다.
성스러운 긍정도 감정이 솟기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나는 지금 맡은 프로젝트가 어렵다는 사실과 계속해 볼 이유를 함께 인정한다. 이 일을 좋아한다고 과장할 필요는 없다. 회사에서 해야 하는 일이고, Pioneer 역할을 맡은 내가 검증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 판단을 작은 행동으로 옮길 때 긍정은 표정 관리보다 구체적인 선택이 된다.
내 도구에는 있던 놀이를 회사 일로 옮기기
나는 개인 학습에서는 놀이의 문법을 이미 사용했다. 자료를 읽고 끝내지 않고 클리핑 도구에 넣는다. 기억이 흐려지는 문제를 만나면 리뷰 시스템을 붙이고, 주제가 쌓이면 위키로 연결한다. 도구가 목적에 맞지 않으면 구조를 바꾼다. 누가 정답을 채점하지 않아도 내 필요에 맞춰 계속 손본다.
회사 일에서는 같은 태도를 찾기 어려웠다. 요청과 잦은 미팅 속에서 시간을 보냈고, 맡은 프로젝트를 계속해야 할 짐으로 느꼈다. 요구를 모두 고정값으로 받아들이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무거워진다. 내가 고를 수 있는 검증 순서와 실험 범위까지 놓치기 쉽다. 다음 회사 프로젝트에서는 개인 학습에 쓰던 놀이의 문법을 의식해서 꺼내 보려 한다.
놀이는 책임을 가볍게 여기는 말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놀이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작은 규칙을 직접 만드는 방식이다. 한 번에 전체 답을 내는 대신 가장 위험한 가정 하나를 고른다. 짧은 프로토타입으로 확인하고, 결과를 다음 규칙에 반영한다. 아이가 손에 든 재료로 놀이를 바꾸듯 프로젝트의 피드백을 다음 움직임에 쓴다.
Claude Code와 같은 도구를 개인 프로젝트에서 쓸 때도 나는 이 흐름을 선호한다. 먼저 작은 작업을 맡기고 결과를 본 뒤 컨텍스트와 제약을 추가한다. 회사에서는 보안 규정과 허용 도구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도구 사용이 허용되지 않아도 실험의 크기를 줄이고 피드백을 빨리 받는 방식은 남는다. 내가 검증 규칙을 설계할 때 프로젝트에 놀이의 성격이 생긴다.
다음 회사 프로젝트에서 바꿀 세 장면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첫 회의 뒤 문서를 두 영역으로 나눌 생각이다. 하나에는 납기, 보안, 최종 산출물처럼 바꾸기 어려운 제약을 둔다. 다른 하나에는 검증 순서, 프로토타입 범위, 공유 형식처럼 내가 제안할 수 있는 규칙을 둔다. 모든 요구를 고정값으로 취급하던 습관을 여기서 끊는다.
첫 주에는 가장 불확실한 가정 하나만 고른다. 회사에서 허용한 도구로 90분짜리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성공 조건과 실패 이유를 한 페이지에 남긴다. 완성품처럼 꾸미는 시간은 쓰지 않는다. 이해관계자에게는 “될 것 같다”는 낙관 대신 무엇을 확인했고 무엇이 아직 비어 있는지 보여 준다. 이 과정이 아이의 놀이와 니체가 말한 정직을 함께 지키는 방법이라고 본다.
프로토타입을 시작하기 전에는 중단 기준도 적는다. 90분 안에 핵심 가정을 확인할 자료를 얻지 못하거나 보안 조건을 넘겨야만 작동한다면, 실험을 키우지 않는다. 다른 접근을 택하거나 담당자와 범위를 다시 합의한다. 놀이는 규칙을 마음대로 바꾸는 행위가 아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무엇을 시험하고 언제 멈출지 내가 책임지는 방식이다.
주간 검토에서는 성과 목록만 보지 않고 내가 바꾼 규칙 하나를 확인한다. 회의 질문을 줄였는지, 검증 순서를 바꿨는지, 작은 실패 뒤 다음 실험을 시작했는지를 본다. 바꾼 규칙이 결과에 도움을 주지 못하면 미련 없이 폐기한다. 낙타처럼 더 오래 버틴 시간을 성과로 세지 않고, 사자처럼 반대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지도 않는다. 다음 움직임을 만든 선택을 남긴다.
프로젝트 중에 “그만두고 싶다”는 문장이 찾아오면 생각과 생각하기를 구분한 메모를 함께 쓸 예정이다. 떠오른 문장을 프로젝트의 최종 판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확인할 근거와 다음 행동을 적는다. 니체의 아이가 새 출발을 맡는다면 조세프 응우옌의 구분은 그 출발 전에 머릿속 소음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다음 프로젝트에서 재미를 느끼겠다고 약속할 수 없다. 대신 내가 정할 수 있는 규칙을 찾고, 가장 작은 실험을 시작하며, 결과를 숨기지 않을 수는 있다. 세 번째 읽은 니체에서 내가 가져갈 행동은 그 셋이다. 프로젝트가 짐으로만 보이는 새벽에는 문서를 닫기 전에 다음 실험의 범위를 한 줄로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