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밑줄을 그었다. "AI 시대, '배움'의 위기가 시작됐다." 제이스 생거가 쓴 『AI 이후의 미래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읽다가 이 문장에서 멈췄다. 반론하기 어려웠다. 나도 매일 AI에게 묻고, AI에게 쓰게 하고, AI에게 고쳐달라고 한다. 그런데 정확히 내 머리에 남는 게 있느냐고 물으면, 자신이 없다.
이 고민을 갖고 며칠을 생각했다. 결론은 이렇다. AI가 있으니 그냥 물으면 되는 시대가 맞다. 할루시네이션은 기술이 해결해줄 거라고 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AI에 의존하다 보면, 내가 AI에게 줄 수 있는 아이디어의 질이 점점 떨어진다. AI가 모르는 것을 내가 묻지 못하면, AI는 이미 아는 답만 되돌려준다. 암묵지 없는 제너럴리스트의 질문은, AI의 평균값을 얻을 뿐이다.
위기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다
책이 짚는 배움의 위기는 단순히 "학생들이 AI로 숙제를 한다"는 수준이 아니다. 교육 현장에서 글쓰기를 시켜도, 학생이 실제로 역량을 갖췄는지 평가할 방법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AI가 쓴 글과 사람이 쓴 글의 구분이 불가능해지면, 교육자는 학생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파악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책은 이를 "배움의 위기"라고 불렀고, 나는 여기에 밑줄을 그었다.
이건 학교 이야기만이 아니다. 나도 같은 문제에 부딪힌다. Claude에게 코드를 쓰게 하고, GPT에게 리뷰를 맡기고, Cursor로 리팩토링을 한다. 결과물은 빠르고 훌륭하다. 하지만 내가 이 코드를 이해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으면, 대답이 망설여진다. 작동은 하는데, 왜 작동하는지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예전에는 바닥부터 쌓아 올려야 이해도가 생겼다. 문서를 읽고, 에러를 만나고, 직접 고치면서 암묵지가 쌓였다. 지금은 그 과정을 AI가 건너뛰게 해준다. 빠르지만, 내 머리에는 흔적이 안 남는다. 책이 말하는 위기의 본질은 이런 데 있다. "모르는 것"을 아는 건 괜찮다. 물어보면 되니까. 진짜 위험한 건 "모르는 것조차 모르는" 상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면, AI에게 뭘 물어야 할지조차 결정하지 못한다.
나는 top-down 방식의 학습이 AI 시대에 맞다고 생각한다. 큰 그림을 먼저 보고, 필요할 때 파고들고, 다시 전체를 조망하는 식이다. bottom-up처럼 기초부터 차곡차곡 쌓는 방식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AI가 큰 그림을 그려주고, 내가 모르는 부분을 짚어주고, 즉시 보완해주니 top-down이 훨씬 효율적이다. 문제는 top-down으로만 공부하면, 내가 파고들지 않은 구멍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bottom-up은 구멍을 메우면서 올라가는 방식이고, top-down은 구멍을 스킵하고 정상에 닿는 방식이다. 빠르지만 허약하다. 구멍을 발견하는 순간, 그 아래가 텅 비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첫 번째 투약은 공짜" — AI의 비용 구조가 만들 덫
책에서 또 밑줄을 그은 부분이 있다. "많은 신기술이 이른바 '마약상 모델', 즉 초기 저가 전략으로 운영된다. 첫 번째 투약은 공짜라는 말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드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내가 AI를 "공짜"처럼 느끼며 쓰고 있는 것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저가에 풀어놓은 결과일 수 있다는 것.
책은 이어서 설명한다. 노동비용 상승과 노동시장 경색, 그리고 AI의 대체 불가능성이 결합되면서 AI 기업의 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금은 싸게 풀어서 중독을 시키고, 나중에 비용을 올리는 구조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그 맛에 중독되고 있다!"라는 문장에도 밑줄을 그었다. 책의 분석대로라면, AI 비용은 앞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숨겨진 전환 비용, 연동 비용, 유지 비용이 처음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게 배움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관계가 깊다. AI에게 묻는 습관이 몸에 배면, AI 없이는 생각 자체가 안 되는 상태가 된다. AI가 비싸지면, 중독된 사람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공부를 AI에 의존하는 한, 학습 비용이 곧 AI 구독료가 된다. 이건 개인의 학습 자율성이 기업의 가격 정책에 종속되는 구조다.
나는 지금 Claude, GPT, Cursor를 매일 쓴다. 월 구독료를 합치면 꽤 된다. 그런데 그 비용보다 더 큰 문제는, AI가 없으면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는 내 능력 자체가 녹슬었다는 점이다. 책이 경고하는 "중독"은 감정적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마약상 모델"이라는 표현이 자극적이지만,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단순하다. 지금의 저가(또는 무료)는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기계
책에서 가장 섬뜩했던 구간은 사회 조작에 대한 부분이다. "AI 산출물은 단순히 분열을 증폭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갈등의 씨앗을 뿌리고 새로운 균열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생성형 AI가 설득력 있는 가짜 정보, 조작된 이미지, 심지어 허구의 증거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갈등"이라는 표현에서 멈췄다. 기존의 선동이 존재하는 편견을 증폭시키는 거라면, AI 기반 선동은 없던 편견을 새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분열을 키우는 게 아니라, 분열을 발명하는 것이다.
이건 배움의 위기와 직결된다.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이 사실과 조작을 구분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AI가 만든 가짜 갈등에 휩쓸린다. 구분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기초적인 지식, 비판적 사고, 그리고 자기만의 검증 루틴이 필요하다. 그 모든 게 암묵지의 영역이다. AI에게 물어봐서 얻는 답이 아니라, 내가 직접 판단할 수 있는 근육이 있어야 한다. 그 근육은 반복된 학습과 경험으로만 만들어진다.
결국 암묵지의 경쟁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AI 시대에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답은 이렇다. top-down으로 접근하되, 반드시 bottom-up으로 구멍을 메워야 한다. AI에게 큰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되, 돌려받은 답을 내가 직접 검증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설명 못 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게 내가 파고들어야 할 지점이다.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건 나쁘지 않다. 나도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일하는 걸 즐긴다. 문제는 제너럴리스트의 질문이 AI의 평균값만 끌어내는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다. 내가 가진 암묵지, 내가 직접 겪은 경험, 내가 몸으로 익힌 직관이 있어야 AI에게 더 나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AI에게 주지 않은 아이디어, AI가 학습하지 못한 내 경험에서 나오는 통찰. 그게 결국 나만의 차별점이 된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은 문장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했다. 배움의 위기는 AI가 만든 게 아니다. AI가 너무 좋아서, 내가 스스로 배우는 수고를 건너뛰려는 순간 만들어지는 거다. "첫 번째 투약은 공짜"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